2016 수능날의 단상: 한국, 비정상적인 경쟁 사회 by 청순한 에스키모

1. 고등학교는 지옥 같았다. 아침 7시 40분부터 밤 10시까지 학교에서 공부했고, 그 다음에는 독서실에 갔다. 야자로도 그날치의 공부를 끝내기란 역부족이었다. 집에 가서는 잤냐고? 아니. 시를 썼다. 상을 받아야 대학에 갈 수 있었으니까. 매일 그렇게 해도 대회에서 수상하기란 하늘에 별따기였고, 내신과 수능 성적도 자꾸만 삐끗하기 일쑤였다. 한두 문제 틀려서 최저등급을 못 맞추면 밤새도록 시 쓴 게 무의미해졌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언제나 있었다. 내가 혼자 잘하는 건 소용없었다. 남보다 잘해야 했다.

자주 울었고, 이따금 자살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진짜 죽지 않았던 건 언젠가는 끝나리라는 희망 때문이었다. 수능 끝나면 나는 어느 대학에든 가 있겠지. 아, 재수는 싫은데... 어쨌든 끝은 있겠지. 그러고 나면 난 자유로워질 수 있어. 하고싶은 거 다 할 수 있어. 자고싶은 만큼 자고, 드라마도 보고, 여행도 갈 수 있어. 신화 콘서트도 갈 수 있겠지? 그렇게, 공부하다가 힘들면 짝꿍과 함께 수능 끝나면 하고 싶은 일을 적곤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대학만 가면 다시는, 다시는 이렇게 살지 않겠어.


2. 올해를 돌이켜 보다 깜짝 놀랐다. 내가 2016년 한 해 동안 다름아닌 '고3처럼' 살았기 때문이었다. 대학만 가면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나는 올해 소위 '언론고시'에 뛰어들었었다. 일 년에 열 명 남짓 뽑는다는 피디, 그 피디가 되겠다고 말이다. 저널리즘 스쿨에서 수업을 들었다. 직접 취재하고 영상을 제작하기도 했고, 이론적인 부분도 공부했다. 스터디는 일주일에 세 번쯤 했다. 두 편씩 글을 쓰고 퇴고했으며, TV 프로그램이나 영화 모니터링을 했고, '상식'을 취합해서 시험을 쳤다(이렇게 달달 외우고 자체적으로 시험까지 쳐야만 반타작 정도 가능한 게 과연 상식인지 의문.) 두세 시간씩 토론도 했다. 연초에는 매일 아침에 신문 읽고 브리핑하는 스터디를 하기도 했지. 그 와중에 알바도 했다. 나는 너무 바빴다.

피디 준비를 하면서 만난 친구들은 모두 피디가 되기에 충분해 보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그 중 아주 일부만 피디가 되었다. 왜? 애초에 사람을 일 년에 열 명밖에 안 뽑기 때문이다. 열 명이라니. 열 명. 거기에 여자라면 더 힘들다. 피디를 준비하는 사람은 애초에 여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어느 정도냐면, 남자가 하도 없으니까 스터디 모집할 때 남자가 들어온다고 하면 우대해 주는 정도다. 그런데 최종 합격자를 보면? 전원 남자거나 대부분 남자다. 어쨌든, 자리는 너무 적다.

TV며 인터넷에 그 많은 영상이 쏟아져 나오는데 그럼 그걸 다 그 열 명이 만드는 거냐고? 물론 아니다. 실질적으로 피디 역할을 하는 사람은 무수히 많다. 그런데 소위 이름 있는 방송사의 공채 시스템을 통해 입사한 피디가 아니면 돈을 훨씬 적게 받는다. 계약 조건도 아주 불안정하며, 그렇게 조연출을 하다가 피디로 이직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다들 그 열 자리 안에 들어가겠다고 발버둥치는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3. 대학에 합격했을 때 이제 더 이상 지옥 같은 경쟁은 안 해도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건 착각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어른들로부터 숱하게 들었던 '대학만 가면 다 할 수 있어'도 거짓말이었다. 대학에 오니 더한 경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대학을 와도 할 수 없는 것은 너무 많았다. 올해 내가 가장 많이 먹은 것은 편의점 샌드위치 아니면 인스턴트 국밥이었다. 돈도 없고 시간도 없었다. 9000자짜리 자소서를 쓸 때는 며칠 밤을 새야 했고 가위까지 눌렸다. 나는 대학에 왔지만 여전히 잘 먹을 수 없었고 잘 잘 수 없었다. 여전히, 이미 잘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열심히 해야 했다. 대학 입시가 그랬듯이 나만 잘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남보다 잘 하는 게 중요했으니까. 그리고 여전히, 이 경쟁에서 뒤쳐지면 사회에서 낙오될까 두려웠다. 그런데 정규직 피디가 된다고 이 경쟁이 끝날까? 지금 잘 수 없는데, 나중에라고 잘 수 있을까?

대학 입시는 애초에 극소수만이 '승리'할 수 있는 게임이다. 극소수만이 명문대에 가니까. 언론고시 역시 애초에 극소수만이 승리할 수 있는 게임이다. 극소수만이 정규직 피디가 된다. 다른 사람들은 계약직 조연출이 되어 적은 월급을 받고 일은 피디만큼 한다. 여기서 피디만큼이란, 밤샘을 밥 먹듯 하고 밥 굶기는 습관처럼 하는 것을 뜻한다. 대입과 언시만 이렇겠는가? 다 마찬가지다. 각종 고시, 로스쿨, CPA, 취준, 그냥 모든 취준...... 좋은 일자리는 너무, 너무도 적다.

이렇게 극소수만 승리하는 구조가 전 사회 전반에 걸쳐져 있다. 이런 사회는 과연 정상적인 사회인가?
당신이 승리하는 극소수가 된다고 해도, 잠깐의 휴식 뒤에는 언제나 더한 경쟁이 기다리고 있다. 첫 경쟁에서는 승리했다지만 과연 다음 경쟁에서도 당신이 계속 승리할 수 있을까? 이런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인가?
아니, 이렇게 경쟁하며 살아가는 게 당신은 행복한가?


4. 그러니까, 돈이 문제다. 만일 계약직의 월급으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구조라면 어떨까. 아니면 모두에게 기본소득이 지급된다면 어떨까. 사람들은 대기업에 목매지도, 대입 때문에 울지도 않을 것이다. 경쟁이 지금처럼 심하지 않을 테니까. 조금 삐끗하면 돈을 덜 받을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먹고 살 수는 있으니까. 지금처럼 생존이 불가능한 수준의 월급을 받게 되지는 않을 테니까. 사회에서 내쳐질 거라는 불안감에 떨지는 않아도 되니까. 이런 경제적인 구조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한국 사람들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경쟁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 언론고시가 대학 입시보다 더한 점이 있다면, 내가 끊임없이 스스로를 부정해야 했다는 점이다. 나는 피디가 되기에는 너무 날서 있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너무 페미니스트고('너무' 페미니스트가 뭔지도 모르겠다. 성평등을 어떻게 '너무' 추구하지?), 너무 비판을 많이 하고(그래서 까라면 깔 줄 모르고), 너무 윤리를 원칙적으로 지키려 한다는 지적도 받았다. 그래서 내가 대중예술을 하기엔 적합하지 않다는 게 결론이었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나를 숨겼다. 공채의 전 과정에서, 내가 아닌 척했다. 내 생각이 아니라 방송사에서 보기에 괜찮아 보일 것 같은 생각을 짐작해 썼다. 그렇게 일 년을 보내고 나니 나는 이도저도 아닌 인간이 돼 있었다. 언론고시를 몇 년 간 한 친구들은 해를 거듭할수록 자존감이 낮아진다고 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렇게 획일적인 기준으로 방송 피디를 뽑아서 다매체 시대를 어떻게 헤쳐 나가겠다는 건지 의문이다.


덧글

  • 타마 2016/11/22 09:26 # 답글

    가면 갈 수록 어른들말 들어서 좋은 것 하나 없다는 결론이 나오고 있어서 씁쓸한 참입니다. 소위 시키는대로 하는 모범생의 표본같은 저였는데... 그딴거 인생에 아무 도움이 안되더군요 ㅋㅋ

    피디는 다매체 시대를 위해서 뽑는게 아니지요. 자기들 입맛에 맞는 제작물을 생산하기 위한 대리인을 뽑는 것일뿐... 다매체 시대를 생각한다면 그냥 용감하게 인터넷 방송으로 자신의 가치를 올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산마로 2016/11/23 09:43 # 삭제 답글

    님 돈으로 사람들 기본 소득을 준다면 누가 뭐라하겠습니까?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