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 개월 만의 발레 일기 발레 못 하는 발레리나

이글루스에 정기적으로 글 쓰기란 참 어렵다. 사실 평소에 내게 블로그가 있다는 사실을 잊고 지낸다. 할 말은 많은데 그걸 다 트위터니 인스타그램이니 하는 곳에 나눠서 짤막하게 쓰고 있으니, 블로그에 긴 글을 쓸 만한 조각이 모이질 않는 것이다.

요새 발레를 전보다 열심히 하고 있다. '열심히'라고 해 봐야 일주일에 두세 번 수업 나가고 틈틈이 몸 푸는 것뿐이지만, 발레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전과 달라진 것 같다. 이제 뭔가 발레를 제대로 배우고 싶어졌고, 평생 할 운동으로 여기고 있다. 얼마 전에는 그래서 드디어 레오타드와 새 슈즈도 샀다! 오천 원짜리 슈즈 아닌 슈즈로 2년 넘게 버티다가 드디어 제대로 된 슈즈를 장만한 것인데, 전공자인 고모는 '편하려고 운동하는 게 아니니 이렇게 착착 감기는 슈즈는 오히려 좋지 않다'고 하셨다. 또르르... 그래도 일단 전 오천 원짜리 신다가 신으니까 너무 좋은걸요.

얼마 전부터 새로이 함께 하게 된 발레 선생님은 기본기를 탄탄하게 가르쳐 주시는 것 같아서 정말 좋다. 전에 다니던 곳에서는 어려운 동작을 많이 했었는데 그게 재미있기는 해도 사실 제대로 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중심 옮기기도 제대로 못 하고 휘청거리는 내게 발랑세와 파도브레 턴을 시키고... 샤세도 제대로 못 뛰는 내게 그랑 제떼를 시키고......ㅎ...ㅎㅎ... 업도 완전히 못 서는 내게 자꾸 턴만 시키고.. 흐흑...... 초급반 맞냐며.. 그런데 여기서는 턴아웃, 업, 샤세, 이런 기본적인 것들을 중심으로 가르쳐 준다. 바워크 하기 전에 근력운동과 스트레칭도 많이 하고. 

무엇보다 턴아웃 연습을 계속 시켜 줘서 좋다. 사실 나는 일 년 넘게 했는데도 턴아웃이 나아질 기미가 안 보여서 그냥 내 골반과 뼈의 문제인가 보다, 하고 어느 정도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번 선생님이 발뒤꿈치와 발을 따로 쓰는 법을 알려 줬다. 난 턴아웃을 고관절로만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동작 하고 들어올 때마다 발뒤꿈치나 발가락을 먼저 당겨 와서 턴아웃을 유지하라는 거였다. 억지로라도 중심 서는 발을 턴아웃하려고 노력하면서 연습하면 점점 나아질 거라고. 유레카! 업할 때도 그런 식으로 턴아웃을 신경 쓰면서 하니까 엄지, 둘째 발가락으로만 설 수 있게 됐다. 그동안 늘 머리로는 알면서도 자꾸 몸이 휘청거리고, 새끼 발가락에까지 힘이 들어가고, 그러니 자연히 중심 무너지고 종아리 아프고 그랬는데 이제 전보다는 조금 나아진 것 같다. 엄지와 검지로만 서다 보니 엄지 발가락이 조금 아프긴 하지만 말이다. 사실 이 글도 커피 뽑으면서 업 연습하다가 엄지 발가락이 조금 아파서 쓰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발레는 정말 과학적이고 건강에 좋은 운동 같다. 많이들 생각하는 것과 달리 말이다. 나도 직접 해 보기 전까지는 발레를 어려서부터 굶어 가며 몸을 학대해 온 발레리나들이 인형 같은 옷 입고 가학적인 토슈즈를 신고 정형화된 춤을 추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해 보니까 발레만큼 자세를 건강하게 해 주는 게 없다. 발레에서 취하게 하는 말도 안 되는 자세는 사실 컴퓨터 사용으로 굽은 몸을 쫙쫙 펴 준다. 그래서 발레 하고 나면 거의 병원 다녀 온 기분이다. 근육도 얼마나 많이 필요한지 모른다. 온몸에, 특히 배와 등에 딱딱한 근육이 붙어 있지 않으면 발란스를 잡고 제대로 설 수 없다. 턴이나 점프, 파세를 할 때는 물론이고 그냥 서 있기만 할 때도 온몸의 근육이 사용된다. 특히 복근이 부족하면 정말로 서 있을 수가 없다. 무용수들이 스타킹 안 신고 있는 사진을 보면 다들 근육이 무슨 토르처럼 붙어 있다.

그래서 발레를 평생 하려고 한다! 캬하하! 아 그런데 배고프다... 글 마무리가 안 되네... 끝......



어쩔 수 없음에 관하여

꽤 오랫동안 나는 내 삶에서, 그리고 이 세상에서 원하지 않는 것들을 없애려고 애썼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그것들이 내 삶이나 내가 속한 이 세상 안에 존재해야만 한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우울한 감정을 없애려고 했고, 우울하지 않을 때는 또 우울해질까 봐 두려워했다. 2012년 봄에 내가 왜 그렇게 행복했던가를 하나하나 세면서, 그런 행복을 다시 느끼고 싶어했고 어째서 지금은 그 정도로 행복하지 않은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는 그 때처럼 행복해질 수는 없을 것 같아서 슬퍼했다. 앞으로의 삶이 그만큼 행복하지 않을 거라면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동시에 내가 가진 좋은 것들이 변하지 않기를 바랐다. 가족이, 친구가, 애인이 내 곁을 떠나지 않기를, 이 봄의 설렘이 사라지지 않기를, 철학책을 읽으면서 머리가 쪼개질 것 같지만 그래도 흥분되는 이 순간이 계속되기를, 뜻이 맞는 동료들과 영상을 기획하고 찍으러 다니는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내가 앞으로도 내내 행복하기를... 

오늘, 지금 이화사랑에 앉아 참치김밥을 먹고 있으니 그게 얼마나 헛된 바람이었던가 싶다. 모든 건 변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모든 건 변하고 있다. 내 옆에 앉은 벗은 김밥을 다 먹어 가고, 누군가는 방금 이곳을 빠져나갔다. 나도 점점 이 글을 길게 전개해 나가고 있다. 이런 사소한 변화가 모여 시간이 한참 지나면 커다란 흐름이 될 것이다. 나는 아직도 종종 학교에 오지만, 이제 이곳에서 내가 알던 누군가와 마주치리라는 기대는 거의 하지 않는다. 나의 학우들은 모두 학교를 떠났다. 2200원 하던 참치김밥은 2500원이 되었고, 주연이와 내가 그렇게나 좋아하던 치즈김밥은 이제 팔지도 않는다.

모든 게 변한다는 사실을 내가 몰랐던 건 아니다. 다만 싫었을 뿐이다. 그래서 이따금 변화가 아름답다고, 내가 원하지 않는 것들-우울, 차별...- 역시 나름 존재하는 이유가 있으며 때론 아름답기까지 하다고 여겼다. 너무 싫으니까 그렇게라도 생각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난 여전히 원치 않는 것들이 사라질 수 있는 세상을 꿈꿨다. 고통을 느끼지 않게 한다는, 우디 앨런의 기계를 갖게 된다면 주저 없이 머리에 쓸 것이었다.

요즘 난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이려 노력하고 있다. 이번에 상담을 하면서 얻은 가장 큰 결실이다. 대개 많은 것들은 어쩔 수 없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변화는 일어나고 상황은 주어지며 우울은 찾아온다. 그걸 종이 자르듯이 내 삶에서 싹둑싹둑 잘라낼 수는 없다. 고통은 피하려 한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힘든 일을 외면하면, 고통은 외면한 댓가와 함께 더욱 크게 다가온다. 후폭풍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변화가, 주어지는 상황이, 우울이 아름답지만도 않다.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 보아도 여전히 무의미하다고 생각되는 일도 있고, 아무리 이해하려 애써도 이해되지 않아서 차라리 그냥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하고 바라게 되는 일도 있다. 내 간절한 바람과 달리, 모든 일에 언제나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슬프다. 삶이 이렇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그러나, 이 또한 어쩔 수 없다. 내가 원치 않는 일들이 내 삶에 일어난다고 해서 그걸 제거하는 일에만 몰두할 수는 없다. 그건 내가 애쓴다고 해서 없어지지도 않을 뿐더러, 여기에만 몰두하면 그 바깥에서 굴러가고 있는 내 삶을 살지 못하게 된다. 갑자기 우울한 감정이 든다고 해서 '내가 왜 우울할까, 우울한 게 싫다'는 생각을 계속해 봤자 우울한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차라리 '오늘은 좀 우울한 날이네...'라고 생각하면서 평소처럼 할 일을 계속할 때 우울은 좀더 빨리 사그라든다. 게다가 우울한 원인을 분석하면서 그 상황을 피하려고 하다 보면 할 수 있는 게 점점 적어진다. 예를 들어 애인과 헤어져서 우울하다고 해서 연애의 모든 가능성을 차단해 버리면 나는 평생 연애를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연애'에 '우울을 유발하는 것'이라는 낙인이 찍혀 버리는 셈이다. 새로 연애를 했을 때 더 행복할 수도 있는데, 이전에 우울했다고 해서 같은 행동을 했을 때 또 우울해진다는 보장은 없는데 말이다.

나는 신이 아니다. 그러므로 세상 돌아가는 일을 내가 어쩔 수는 없다. 홍준표 같은 사람이 30%나 표를 얻어도, 어느 군인이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징역살이를 하게 돼도, 어느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살해 당해도 내가 어찌할 수는 없다. 그 일을 안 일어나게 할 수도 없으며, 내가 보기 싫다고 귀 막고 눈 감고 산다고 해서 그 일이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다. 세상에 내가 원치 않는 일은 계속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세상의 일부이므로, 내 삶에 내가 원하지 않는 일 또한 계속 찾아 올 것이다. 싫은 걸 바꾸려고 새로운 선택을 하면 또 싫은 게 생긴다. 외로운 게 싫어서 가족과 같이 살게 되면 가족 내의 규범을 따라야 해서 귀찮아질 것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유학을 떠나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가까이 있지 못해 슬플 것이다. 언제나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다. 우디 앨런의 기계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도 나는 사랑하는 몇몇 사람들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어서 너무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언제나 모두가 내 곁에 있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이따금 둘 모두 얻게 되기도 하지만 그건 그저 운이 좋은 경우일 뿐이다.

만일 오늘 내게 우디 앨런의 기계가 주어진다면 난 어떤 선택을 할까. 기계를 쓰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할 수는 없다. 어쩌면 쓸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것이 모두 이루어지는 세계, 고통 없는 세계가 있다면 그리로 가고 싶은 건 여전하다. 나는 악마로부터 '네가 여태까지 살아 온 삶이 앞으로도 하나도 새로울 것 없이 영원히 반복될 것이다'는 속삭임을 들은 차라투스트라처럼 살 용기는 없다. 차라투스트라를 통째로 옮겨 놓은 <컨택트>의 주인공처럼 살 자신도 없다. 나는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며, 지금 싫은 것이 어쩌면 미래에는 나아질 수도 있다고 희망하며 살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이제, 지금 싫은 것이 미래에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그 때는 또 새롭게 싫은 것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됐다. 우디 앨런의 기계 같은 세상은 없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세계에 산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그저 '어쩔 수 없구나' 하고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슬프지만, 삶이란 원래 그런 건가 보다.

생리컵 메루나 쇼티, 생리팬티 thinx 후기

생리는 정말 끔찍하다.
한 달에 일주일 씩이나, 내 의도와는 1도 상관없이 피를 철철 흘리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도 끔찍하고, 그 피가 이불이며 아끼는 바지에 여기저기 묻어 난다는 것도 끔찍하다. 거기에 생리통까지 심한 나 같은 사람은, 생리 첫 날과 둘째 날은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할 수조차 없다. 아랫배를 칼로 난도질하는 것처럼 아프고, 허리도 뻐근하고, 밑도 빠질 것 같다. 위는 더부룩해서 메슥거리고, 어쩐지 뇌마저 부풀어 오른 듯한 느낌이 든다. 진통제를 먹어도 소용없을 때도 많다. 그리고 일단 약을 먹으려면 밥을 먹어야만 하는데, 너무 아파서 앉기도 힘든 상황에서 밥을 차려 먹는다는 것도 진이 빠지는 일이다. 그러나 통증을 조금이라도 가라앉힐 방법은 약을 먹는 것뿐이므로, 울면서 밥을 입에 쑤셔 넣고 약도 삼켜 내야 한다. 그리고 나서는 아픈 배를 핫팩에 대고 침대에 누워 끙끙대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아 이런 얘길 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아무튼 생리는 끔찍하다. 이 끔찍한 기간을 조금이라도 덜 끔찍하게 보내기 위해, 생리컵과 생리팬티를 사용하고 있다. 아직 국내에는 둘 모두 사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아, 이렇게 후기를 남긴다.


1. 생리컵
생리컵은 종류가 정말 정말 다양한데, 나는 메루나 쇼티 빨간색 M을 샀다.
메루나 온라인 쇼핑 홈페이지:
http://www.me-luna.eu/Online-Shop-en

생리컵을 살 때는 일단 생리 중에 본인의 질 길이를 재야 한다. 재 보니 나는 손가락 한 마디 반 정도밖에 안 들어가는 아주 낮은 포궁이었다. 질 길이보다 짧은 컵을 사야 하는데 해당하는 것이 별로 없어서 찾는 데 애를 먹었다. 그나마 메루나 쇼티가 시판되는 생리컵 중 가장 짧고 괜찮다고 하여 이것을 샀다.

메루나는 색깔에 따라 단단한 정도가 다르다. 내 기억으로는 색이 짙을수록 단단했던 것 같다. 방광이 예민한 사람이라면 단단한 컵을 착용했을 때 압박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너무 얇은 컵은 몸 속에 넣었을 때 쉽게 펴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빨간색은 중간에서 조금 단단한 정도였던 것 같다. 나는 압박감은 느끼지 못하고 있다.

착용하고 빼고 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 처음에는 얘를 접어서 넣었는데 자꾸 새길래 왜 이럴까 했는데, 알고 보니 내가 컵을 너무 깊숙히 넣어서 컵이 포궁 경부를 감싸는 것이 아니라 포궁 경부와 질벽 사이에 끼어 있었던 것이다^_ㅠ 내 질 길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정말 짧았다 ㅋㅋㅋㅋㅋ 다른 사람들은 생리컵을 접어서 몸 깊숙이 넣는다는데 나는 접어서 넣고 그냥 거의 바로 편다.

그런데 문제는, 얘가 용량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 나는 낮은 포궁일뿐 아니라 달랑거리는 포궁 경부인 것 같다. 그래서 컵을 넣으면 포궁 경부가 컵 안으로 많이 들어와서 용량 손실이 많은 듯하다. 머그잔처럼 생긴 컵을 샀으면 포궁 경부가 컵 안으로 내려와도 용량 손실이 별로 없을텐데, 메루나 쇼티는 빗살무늬 토기처럼 생긴 것이어서 용량 손실이 많다. 그래서 난 양이 많을 땐 한 시간도 안 되어서 컵이 샌다. 젠장.

이러한 시행착오를 참고하여, 다음에는 페미사이클을 사 볼까 한다. 그 때도 페미사이클과 메루나 중에 고민하다가 페미사이클은 질 길이가 5cm은 되어야 한다고 해서 메루나를 샀는데... 잘 모르겠다. 페미사이클은 용량 손실이 없거나 적게 생겨서 탐이 난다. 질 길이 긴 사람들 부럽다! 예쁜 컵도 많던데 난 다 못 써!



2. 생리 팬티 thinx
THINX는 기존에 우리가 알던 생리 팬티와 다르다. 이걸 입으면 생리대도 탐폰도 생리컵도 안 해도 된다. 생리 기간에 그냥 이것만 입고 있으면 된다고! 레알 혁명이다.

https://www.shethinx.com/

나는 여기에서 hiphugger와 boyshort를 하나씩 샀다. hiphugger가 boyshort보다 좀더 많은 양을 커버한다고 하는데, 그래도 내가 느끼기엔 비슷한 것 같다. 첫날이나 둘째 날에 이 팬티를 입으면 아침부터 오후3시경까지, 그 이후부터 밤까지 입을 수 있다. 잘 때 입고 자도 용량 충분하고.

사이트에서 홍보하는 것처럼 '피 위에 앉는 느낌'이 아예 안 나지는 않는다. 양이 많거나 굴을 낳게 되면(ㅠㅠ) 피 위에 앉는 느낌이 조금은 난다. 그래도 생리대 위에 앉는 것보다는 백배 천배 낫다. 팬티가 수영복 정도로 두껍기는 한데, 어쨌든 그냥 옷 입고 있는 느낌이다. 커버하는 양도 생리대보다 많고.

세탁은 그냥 찬물에 조금 담가 뒀다가 비누로 빨면 된다. 뜨거운 물은 안 됨! 피는 단백질이라서 뜨거운 물과 만나면 응고해 버린다.

나는 보통 생리가 시작되면 잽싸게 메루나를 착용하고 thinx를 입는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메루나가 커버하는 양이 적어서 금방 새는데, 새도 팬티가 잡아주니 아무 걱정이 없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생리 기간엔 늘 짙은 하의를 입는다. 흑흑.





메루나는 브렉시트 때 샀으니까 산 지 일 년이 다 돼 가고, thinx는 겨울에 샀으니 아직 6개월이 채 안 됐다.
나의 생리는 컵과 팬티를 사기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생리대랑 탐폰에 돈 안 써도 돼서 좋고, 깔끔해서 좋고, 편리해서 좋다. 물론 팬티 빨 때는 쪼금 귀찮지만......


이상으로 후기를 마친다. 끝.

덧) 나의 생리는 컵과 팬티를 사용하면서 엄청나게 편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생리란 끔찍한 것이다. 특히 생리통은 정말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사실 나는 미레나 iud나 스카일라를 고려하고 있다. 생리를 안 할 수만 있다면 나의 삶의 질은 얼마나 드라마틱하게 달라질까. 생각만 해도 꿈 같다. 한 달에 한 번씩 병가를 내지 않아도 되는 삶, 이 고통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삶이라니......

발레 못 하는 발레리나 발레 못 하는 발레리나

발레를 시작한 지도 벌써 일 년이 훌쩍 넘었다. 이렇게 쓰면 꽤나 발레를 잘 하는 사람처럼 보일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바로 일주일 전에 시작한 사람이나 나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발레를 정말 못 하는 발레리나이기 때문이다.

일 년을 했는데도 아직도 턴아웃이 안 되고, 스트레칭은 100도를 못 넘기고, 포인은 계속해서 안짱으로 할뿐 아니라 발끝까지 꽉 쥐면 자꾸 발바닥에 쥐가 난다. 턴아웃은 아마 앞으로도 쭉 안 될 것 같다. 이건 근육이 아니라 뼈의 문제 같다. 성인이 된 마당에 노력한다고 뼈 모양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니, 턴아웃은 그냥저냥 포기해야겠지. 어쨌든, 난 정말 발레를 못 한다.

어제는 집앞 무용학원에 갔다. 원래 하던 곳이 잠깐 시간이 안 맞아서, 이번 달만 이 학원 쿠폰을 끊었다. 그리고 제일 낮은 반 수업을 듣고 있다. 내 스케줄이 들쑥날쑥해서 같은 요일 같은 시각에 못 가고, 다른 요일 다른 시각에 가다 보니 매번 선생님이 다르다. 수업 내용도 다르다. 그동안은 따라갈 만했는데, 어제는 아니었다. 분명 제일 낮은 반이라고 해서 들어간 건데 수업이 너무 어려웠다. 수강생 중에 내가 제일 못 했다. 그래, 사실 그건 익숙하다. 근데 어제는 너무 눈에 확 띄게 나만 못 했다. 바 워크 순서도 너무 복잡했고, 센터로 가니까 대멘붕... 제자리에서 하는 동작은 허둥지둥 따라할 수 있었는데, 문제는 두 명씩 나와서 하는 동작이었다. 뭐랑... 글리사드랑.... 또 뭐 빠꾸뤼??? 인가? 무슨 제떼랑 연결해서 하는 거였는데, 선생님 시범을 보고 나는 '방금 뭐가 지나갔지?' 했다. 첫 스텝 이후로 하나도 알 수가 없었다. 사실 난 글리사드도 아직도 제대로 못 한다. 이전에 다니던 곳에서 글리사드+아삼블레를 몇 번 했었는데, 아삼블레가 아니라 글리사드를 못 해서 그게 어려웠었다. 결국 난 두 명씩 서서 센터를 하는 내내 쪽팔려서 죽을 것 같았다. 너무, 너무, 너무 창피해서 그냥 문을 열고 나가고 싶었다. 밤 수업이라 홀 밖에 아무도 없는 게 다행이었다. 낮 수업 때처럼 뒷 타임 사람들이 밖에서 몸 풀면서 이쪽을 쳐다보기라도 했다면 진짜 죽고 싶었을 것 같다. 내가 얼마나 못 했냐면, 선생님도 포기하고 나를 교정해 주지 않을 정도였다. 수업 끝나고, 울고 싶은 걸 참고 선생님께 스텝 알려달라고 했더니 한 열 개 중에 세 개를 알려주시며 이것만 계속 하라고 하셨다. 근데 오늘이 되니 벌써 또 글리사드를 까먹었다...

결국 너무 우울해서 어제 세 시까지 잠들지 못했다. 사실 요새 내내 우울하다. 이건 발레 때문은 아니고 내 미래랑 연애 때문인데, 아무튼, 원래 어제 발레를 갔던 건 우울해서였다. 발레를 하는 동안에는 그나마 우울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고 발레를 하고 나면 뭔가 해 냈고 운동했다는 기쁨에 우울함이 좀 덜해진다. 그래서 어제 발레를 갔던 거였는데... 더 우울해지고 말았다. 젠장.

나는 원래 운동을 못 한다. 내가 가진 모든 능력 중에 신체를 움직이는 능력이 가장 구릴 것이다. 아기 때는 내가 하도 늦게까지 못 걸어서 내게 무슨 문제가 있는 줄 알고 할아버지가 날 병원에 데려가셨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는 수행평가 연습한다고 부모님과 함께 공원에 배드민턴 치러 갔다가, 내가 하도 못 하니까 답답해진 부모님이 나는 구석에 앉혀 두고 자기들끼리 치기도 했다. 못 하니까 안 하고, 안 하니까 더 못 한다. 남들 앞에서 운동할 일이 있으면 쪽팔림이 가장 앞선다. 그런 내가 발레를 일 년 넘게 하고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살면서 무슨 운동이든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해 본 적이 없었고, 이렇게 재밌게 한 적도 없었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다. 하지만 어제 같은 날은 정말 힘 빠지고 창피해진다.

중고등학교 시절, 반에서 공부를 포기했던 친구들이 꽤나 있었다. 선생님이 뭘 물어보면 쩔쩔매며 창피해하고, 멍하니 칠판을 바라보거나 잠을 자던 친구들. 아무리 설명을 해 줘도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하던 친구들. 이제 그 마음을 알겠다.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해가 간다. 그 친구들에게는 선생님의 설명이 어제 발레 선생님이 스텝 밟던 거랑 똑같이 들렸겠지. 나는 어느 발을 어떻게 하는지조차 모르겠는데, 다른 수강생들은 몇 번 연습하더니 바로 따라하고 팔동작까지 해내던 걸 보고 얼마나 좌절스러웠는지 모른다. 기본을 알려 주면 응용문제까지 풀어 내는 친구들 틈바구니에서 나는 기본조차 이해를 못 하는 그 기분은 정말 비참한 거다. 아, 그러고 보니 몇 년 전 잠깐 영어과외 했던 학생도 생각 난다. 네가 대체 그 문제를 왜 틀리는지 이해 못 해 줘서 선생님이 미안했다......


아무튼, 나는 발레를 x나게 못 하는 발레리나지만 앞으로도 계속 할 것이다. 난 수학을 다른 과목보다 못 하는 편이었는데, 그래도 꾸준히 하면 중간은 갔다. 운동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했으면 기초는 했을텐데. 안타깝지만, 그러니 지금부터 하면 된다. 발레도 계속 하면 남들 많이 많이 늘 때 나는 조금이라도 늘겠지. 어쨌거나 처음보다 자세가 정말 좋아졌고, 팔근육도 힘 주면 보일 만큼 생겼고, 복근과 허벅지 안쪽, 바깥쪽 근육, 엉덩이 근육도 많이 생겼으니까. 어제 수업에서 내가 유일하게 제대로 따라갔던 게 있다면 바로 근력운동이었다. 흠, 어쩌면 나는 남보다 근육은 좀 잘 붙는 편일지도? 수업 끝나고 혼자 근육 만지는 게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크킄.... 플리에 자세도 처음보다는 훨씬 좋아졌을 거다. 아마 그럴거야. 앞으로 여기다 가끔 발레 일기를 쓰려고 한다. 발레 못 하는 발레리나가 쓰는 발레 일기!

2016 수능날의 단상: 한국, 비정상적인 경쟁 사회

1. 고등학교는 지옥 같았다. 아침 7시 40분부터 밤 10시까지 학교에서 공부했고, 그 다음에는 독서실에 갔다. 야자로도 그날치의 공부를 끝내기란 역부족이었다. 집에 가서는 잤냐고? 아니. 시를 썼다. 상을 받아야 대학에 갈 수 있었으니까. 매일 그렇게 해도 대회에서 수상하기란 하늘에 별따기였고, 내신과 수능 성적도 자꾸만 삐끗하기 일쑤였다. 한두 문제 틀려서 최저등급을 못 맞추면 밤새도록 시 쓴 게 무의미해졌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언제나 있었다. 내가 혼자 잘하는 건 소용없었다. 남보다 잘해야 했다.

자주 울었고, 이따금 자살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진짜 죽지 않았던 건 언젠가는 끝나리라는 희망 때문이었다. 수능 끝나면 나는 어느 대학에든 가 있겠지. 아, 재수는 싫은데... 어쨌든 끝은 있겠지. 그러고 나면 난 자유로워질 수 있어. 하고싶은 거 다 할 수 있어. 자고싶은 만큼 자고, 드라마도 보고, 여행도 갈 수 있어. 신화 콘서트도 갈 수 있겠지? 그렇게, 공부하다가 힘들면 짝꿍과 함께 수능 끝나면 하고 싶은 일을 적곤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대학만 가면 다시는, 다시는 이렇게 살지 않겠어.


2. 올해를 돌이켜 보다 깜짝 놀랐다. 내가 2016년 한 해 동안 다름아닌 '고3처럼' 살았기 때문이었다. 대학만 가면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나는 올해 소위 '언론고시'에 뛰어들었었다. 일 년에 열 명 남짓 뽑는다는 피디, 그 피디가 되겠다고 말이다. 저널리즘 스쿨에서 수업을 들었다. 직접 취재하고 영상을 제작하기도 했고, 이론적인 부분도 공부했다. 스터디는 일주일에 세 번쯤 했다. 두 편씩 글을 쓰고 퇴고했으며, TV 프로그램이나 영화 모니터링을 했고, '상식'을 취합해서 시험을 쳤다(이렇게 달달 외우고 자체적으로 시험까지 쳐야만 반타작 정도 가능한 게 과연 상식인지 의문.) 두세 시간씩 토론도 했다. 연초에는 매일 아침에 신문 읽고 브리핑하는 스터디를 하기도 했지. 그 와중에 알바도 했다. 나는 너무 바빴다.

피디 준비를 하면서 만난 친구들은 모두 피디가 되기에 충분해 보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그 중 아주 일부만 피디가 되었다. 왜? 애초에 사람을 일 년에 열 명밖에 안 뽑기 때문이다. 열 명이라니. 열 명. 거기에 여자라면 더 힘들다. 피디를 준비하는 사람은 애초에 여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어느 정도냐면, 남자가 하도 없으니까 스터디 모집할 때 남자가 들어온다고 하면 우대해 주는 정도다. 그런데 최종 합격자를 보면? 전원 남자거나 대부분 남자다. 어쨌든, 자리는 너무 적다.

TV며 인터넷에 그 많은 영상이 쏟아져 나오는데 그럼 그걸 다 그 열 명이 만드는 거냐고? 물론 아니다. 실질적으로 피디 역할을 하는 사람은 무수히 많다. 그런데 소위 이름 있는 방송사의 공채 시스템을 통해 입사한 피디가 아니면 돈을 훨씬 적게 받는다. 계약 조건도 아주 불안정하며, 그렇게 조연출을 하다가 피디로 이직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다들 그 열 자리 안에 들어가겠다고 발버둥치는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3. 대학에 합격했을 때 이제 더 이상 지옥 같은 경쟁은 안 해도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건 착각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어른들로부터 숱하게 들었던 '대학만 가면 다 할 수 있어'도 거짓말이었다. 대학에 오니 더한 경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대학을 와도 할 수 없는 것은 너무 많았다. 올해 내가 가장 많이 먹은 것은 편의점 샌드위치 아니면 인스턴트 국밥이었다. 돈도 없고 시간도 없었다. 9000자짜리 자소서를 쓸 때는 며칠 밤을 새야 했고 가위까지 눌렸다. 나는 대학에 왔지만 여전히 잘 먹을 수 없었고 잘 잘 수 없었다. 여전히, 이미 잘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열심히 해야 했다. 대학 입시가 그랬듯이 나만 잘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남보다 잘 하는 게 중요했으니까. 그리고 여전히, 이 경쟁에서 뒤쳐지면 사회에서 낙오될까 두려웠다. 그런데 정규직 피디가 된다고 이 경쟁이 끝날까? 지금 잘 수 없는데, 나중에라고 잘 수 있을까?

대학 입시는 애초에 극소수만이 '승리'할 수 있는 게임이다. 극소수만이 명문대에 가니까. 언론고시 역시 애초에 극소수만이 승리할 수 있는 게임이다. 극소수만이 정규직 피디가 된다. 다른 사람들은 계약직 조연출이 되어 적은 월급을 받고 일은 피디만큼 한다. 여기서 피디만큼이란, 밤샘을 밥 먹듯 하고 밥 굶기는 습관처럼 하는 것을 뜻한다. 대입과 언시만 이렇겠는가? 다 마찬가지다. 각종 고시, 로스쿨, CPA, 취준, 그냥 모든 취준...... 좋은 일자리는 너무, 너무도 적다.

이렇게 극소수만 승리하는 구조가 전 사회 전반에 걸쳐져 있다. 이런 사회는 과연 정상적인 사회인가?
당신이 승리하는 극소수가 된다고 해도, 잠깐의 휴식 뒤에는 언제나 더한 경쟁이 기다리고 있다. 첫 경쟁에서는 승리했다지만 과연 다음 경쟁에서도 당신이 계속 승리할 수 있을까? 이런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인가?
아니, 이렇게 경쟁하며 살아가는 게 당신은 행복한가?


4. 그러니까, 돈이 문제다. 만일 계약직의 월급으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구조라면 어떨까. 아니면 모두에게 기본소득이 지급된다면 어떨까. 사람들은 대기업에 목매지도, 대입 때문에 울지도 않을 것이다. 경쟁이 지금처럼 심하지 않을 테니까. 조금 삐끗하면 돈을 덜 받을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먹고 살 수는 있으니까. 지금처럼 생존이 불가능한 수준의 월급을 받게 되지는 않을 테니까. 사회에서 내쳐질 거라는 불안감에 떨지는 않아도 되니까. 이런 경제적인 구조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한국 사람들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경쟁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 언론고시가 대학 입시보다 더한 점이 있다면, 내가 끊임없이 스스로를 부정해야 했다는 점이다. 나는 피디가 되기에는 너무 날서 있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너무 페미니스트고('너무' 페미니스트가 뭔지도 모르겠다. 성평등을 어떻게 '너무' 추구하지?), 너무 비판을 많이 하고(그래서 까라면 깔 줄 모르고), 너무 윤리를 원칙적으로 지키려 한다는 지적도 받았다. 그래서 내가 대중예술을 하기엔 적합하지 않다는 게 결론이었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나를 숨겼다. 공채의 전 과정에서, 내가 아닌 척했다. 내 생각이 아니라 방송사에서 보기에 괜찮아 보일 것 같은 생각을 짐작해 썼다. 그렇게 일 년을 보내고 나니 나는 이도저도 아닌 인간이 돼 있었다. 언론고시를 몇 년 간 한 친구들은 해를 거듭할수록 자존감이 낮아진다고 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렇게 획일적인 기준으로 방송 피디를 뽑아서 다매체 시대를 어떻게 헤쳐 나가겠다는 건지 의문이다.


1